"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그것은 언제나 순교자들의 마지막 말을 듣는 것은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그들의 죽으면서 한말들은 들을 때 우리들의 심장이 뛰는 것입니다. 폴리갑은 2세기의 초의 설교자였습니다. 영국에서 그의 이름이 폴리갑이고 라틴어로는 폴리갑퍼스입니다. 폴리갑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이방인의 판사 앞에 섰을 때 그는 말하기를, "당신은 이제 사람이다. 당신은 죽을 필요가 없다...한번만 맹세하면 내가 당신을 풀어주겠다. '주 시이저'라고 말하는 것과 향을 피우는 것이 무슨 해로운 것이 있는가? 당신은 지켜라 그러나 시저에게 맹세하라 그리하면 나는 당신을 기쁘게 살려 주겠소. 그리스도를 부인하라 그리하면 당신은 살 것이다."
폴리갑퍼스는 대답하기를,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겼소, 그리고 그분은 한번도 나에게 나쁘게 하신 적이 없소. 어찌 내가 나를 구원한신 나의 왕을 부인할 수 있겠소?" 그 판사는 말하기를, "나는 당신을 불로 태울 것이다." "당신은 날 그 불로 태운다고 위협할 것인데 그러나 한 시간이면 그냥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다가오는 심판의 불을 알지 못하며 그리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나 왜 당신은 뒤로 미루십니까? 당신이 나오는 것을 실천하세요."
이 점령군 사령관은 그의 사자를 보내어 경기장의 군중들에게 큰 소리로 선포하기를 "폴리갑은 그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를 산채로 태워라!" 이방 군중들은 큰 소리를 질렀다. 불이 준비되었다. 사형집행관이 기둥에 그를 못 박으려고 폴리갑에게 다가왔다. 그 희생제물은 조용히 말하기를, "나를 그냥 놔두시오, 그는 나를 내어 주어서 불속에서 견딜 수 있게 하시어 못으로 장작더미 위에서 당신이 원하는 못을 통한 고정함이 없이 견디게 할 것이오.
그리고 나서 그 설교자는 기도에 그의 목소리를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는 죽을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그 불은 빛났고 한 줄의 빛이 그의 위로 비추었습니다. 그의 몸이 불속에서 타지 않을 때, 사형 집행관은 단검으로 그를 찔렀습니다. 그리하여 요한의 제자요 심나에서 목사였던 폴리갑퍼스의 의 생명은 끊어졌습니다(야고보 헤프리, 믿음의 영웅들, 무디 출판사, 1963 12-14쪽).
스펄전은 "제인 버우처에 대하여, 우리 침례교회의 영광스러운 순교자인 바우처에 대하여 말하기를...그녀를 크랜머와 리드레이, 영국 교회의 비숍들, 앞으로 데려왔을 때, 그들은 이 침례교도를 비난하고 화형에 처했는데, 그녀에게 말하기를 태우는 것이 쉽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의 어떤 사람보다 나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종이며; 그리고 만약에 당신들이 당신들의 가련한 자매를 죽음에 넘기면, 조심하시오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로마의 이리를 풀어 놓을 것이고 그리고 당신들의 하나님을 위해 고통을 또한 갖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어떻게 옳았는데, 이 사람들의 둘 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챨스 스펄젼을 보라, "모두 충분히 확대하자," 새로운 공원 거리의 강단, 제6권, 481-482면).
그들이 화형에 처해졌을 때에 수 세기가 떨어져 있을지라도, 폴리갑과 제인 바우쳐는 믿음의 강력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죽음과 고문으로 위협할 때에 지금도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 그는 높은 제사장에게 말씀하여야 하였습니다. 예, 그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렇게 말씀하셔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간이 되어 그를 채찍에 맞아 절반쯤 죽으시고 그리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놀라운 사실로서 그는 잠잠하였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그는 그들이 때릴 때에도 한 마디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도 아무 말씀을 않으셨습니다! 우리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것으로부터 깊이 마십시다 세 가지 질문과 그들의 대답으로.
I. 첫째로, 예수라 불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선지자가 말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말하기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사 53:7).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는 영광의 주시고, 삼위일체의 2위이시고, 인간의 육체로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단지 인간 선생이나 단지 선지자로 생각하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용어에서 그의 생각의 방을 우리에게 남겨 두지 않았고,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10:30).
다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5).
만약에 어떤 다른 사람이 이것을 말했다면 우리들은 그를 미쳤거나 귀신들렸거나 정신 이상자나, 헛소리를 하거나 아니면 착란증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그와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이시고 그리고 그가 말씀하실 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말씀으로 우리는 잠깐 멈추고, 그리고 우리들이 최악으로 가정하여, 만약에 그가 전혀 맞지 않다면 이상한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씨. 에스. 레위스에게 찬성하지는 않을지라도, 어떻게 우리중의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명한 서술을 찬성하지 않겠습니까? 씨. 예스. 루이스는 말하기를,
나는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그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어리석은 것을 말하는 것을 예방하려고 합니다:
나는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그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어리석은 것을 말하는 것을 예방하려고 합니다:
"저는 위대한 도덕적인 교사로서 예수님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으로 선포하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말하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한 사람이 단지 한 인간이었고 그리고 어떤 것들의 부류를 말했던 예수님은 위대한 도덕 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정신 이상자이거나 - 같은 레벨로서 한 사람은 그는 물에 삶은 계란이거나 - 아니면 그는 지옥의 마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듯이 여러분의 선택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이고:
또는 어떤 미친 사람이거나 또는 더 나쁜자이다. 여러분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입 닥치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은 그에게 침을 밷고 마귀처럼 그를 죽일 수 있다; 아니면 여러분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를 주님과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하여 위대한 인간적인 교사로 어떤 거만한 어리석음으로 그에게 나오지 맙시다. 그는 우리들에게 열어놓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씨. 에스. 레위스 박사., 단지 기독교, 하퍼 콜린스, 2001, 52쪽).
"여러분은 그에게 침을 뱉거나 그리고 마귀처럼 그를 죽이거나; 아니면 여러분은 그의 발 앞에 엎드리고 그를 주님과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다...여러분은 반듯이 여러분의 선택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거기에 여러분은 그것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불교주의나 또는 힌두이즘이나 섞을 수 없는 것인데 단지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열어놓고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게 하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옵션을 남기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여러분은 그에게 침을 뱉을 수 있고 그리고 그를 죽일 수 있고...아니면 여러분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를 주님과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고...여러분은 반듯이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II. 둘째로, 왜 이 사람 예수님은 사람들이 심문하고 그를 죽이기 전에 그 자신을 방어하는데 실패하였을까?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사 53:7).
위대한 과학자 아인스타인은, 크리스천이 아닐지라도, 말하기를,
아무도 예수님의 실제적인 존재하심을 느끼지 않고 [사] 복음서를 읽을 수는 없다. 모든 단어마다 그의 인격이 맥박치고 있다. 신화가 아님이 이러한 생명으로 가득차 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사 53:7).
위대한 과학자 아인스타인은, 크리스천이 아닐지라도, 말하기를,
아무도 예수님의 실제적인 존재하심을 느끼지 않고 [사] 복음서를 읽을 수는 없다. 모든 단어마다 그의 인격이 맥박치고 있다. 신화가 아님이 이러한 생명으로 가득차 있다
(알버트 에인스타인 박사., 토요일 저녁 우편물, 1929년 10월 26일).
지금 그가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는 아무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그를 때리고 죽이는 사람들로부터 그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을 까요? 아마도 무신론자인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그 질문에 대하여 근접한 대답을 하였는데 그가 말할 때,
만약에 소크라테스가 생애를 살고 그리고 철학자처럼 죽었다면, 예수님은 생애를 살고 그리고 하나님처럼 죽으셨다 (진-재큐스 루소, 프랑스 철학자, 1712-1778).
만약에 소크라테스가 생애를 살고 그리고 철학자처럼 죽었다면, 예수님은 생애를 살고 그리고 하나님처럼 죽으셨다 (진-재큐스 루소, 프랑스 철학자, 1712-1778).
예수님은 그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 땅에 내려오신 바로 그의 목적은 고통을 받고 죽는 것이었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기 일년 전에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때로부터[이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1).
신약 성경 주석의 적용은 말하기를,
베드로는 바로 예수님은 그리스도, 메시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막 8:29].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도 그리스도가 무엇하러 이땅에 오셨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실 때 [그는] 반듯이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그리고...죽임을 당하리라,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런 것들을 그렇게 말씀하심에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말씀하시기를 삼일 후에 [그는]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죽을 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제 삼일에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실 것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이것에 대하여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토마스 홀, 신약성경 주석의 적용, 왕의 길 출판사, 1996년, 260-261면).
베드로는 바로 예수님은 그리스도, 메시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막 8:29].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도 그리스도가 무엇하러 이땅에 오셨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실 때 [그는] 반듯이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그리고...죽임을 당하리라,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런 것들을 그렇게 말씀하심에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말씀하시기를 삼일 후에 [그는]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죽을 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제 삼일에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실 것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이것에 대하여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토마스 홀, 신약성경 주석의 적용, 왕의 길 출판사, 1996년, 260-261면).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하는 것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딤전 1:15).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그가 죽으심으로, 그리고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고 그가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빌라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요 18:37).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요 18:37).
III. 세째로, 본문이 예수님의 침묵의 고난에 대하여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가?
일어서서 그리고 이사야 53:7을 큰 소리 내어 다시 한번 읽읍시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침묵하는]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앉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 영 박사는 말하기를 이것은 번역 될 수 있는데, "그는 그 자신의 곤욕을 [허락하였다].
" 곤욕을 당하는 것을 그는 자원한 고통이었다...자신의 방어를 하지 않거나 그의 입술로 항의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빌라도의 심판의 자리 앞에서 진리의 종은 한 말도 대답하시지 않았을 때 성취되어짐의 생각이 없이는 이 예언서를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비방을 받을 때, 다시 비방하지 않았고' [그가 고난을 받을 때 위협하지 않았고]"
(에드워드 영 박사., 이사야서, 에드맨스, 1972, 제 3권, 348-349).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아주 놀랐더라]" (마 27:13-14).
"대제사장들이 여러가지로 고소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로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막 15:3-5).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그리스도를 양에 비유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람들은 양들을 대리고 와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그들을 죽였습니다. 제물로 양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것을 베어 내고, 모든 양털을 깎았습니다. 양들은 마치 털 깎는 앞에서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제물의 양은 잠잠하였고 그것은 털을 깎끼우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침례 요한은 또한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비교하였으며 그가 말할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여러분이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올 때, 그의 십자가의 희생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갚았고,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는 자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책은 십자가에서 그의 죽으심으로 옮기워졌습니다.
대빗 브레이너드, 유명한 아메리칸 인디언의 선교사는, 그의 목회에서 이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인디언들에게 그가 설교할 때, 그는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과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으부터 절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번 이 사람들이 한번 위대한...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우리들의 행동에 의하여 사로잡힌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지 않았습니다"
(바울 이 탄 박사., 7,700예화 백과 사전, 확신의 출판사, 1979년, 238면).
저는 오늘 날도 마찬 가지로 진리인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한번 보았는데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3),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3),
그리고 한번 여러분은 믿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를 붙잡았고 여러분은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비교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가 쉽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으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구원 되었습니다!
그가 죽으심에 대하여, 스펄젼은 말하기를, "나의 신학은 네 작은 단어들입니다 -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겠고 저는 설교하기를 만약에 제가 다시 부활한다면, 그러나 그것은 죽는 것보다 더욱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다" (탄, 같은 책). 여러분은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만약에 아니라면, 부활하신 구세주께 나와서 그를 오늘 밤 신뢰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날 위해 죽으시고, 그리고 저는 그의 보혈과 의로움으로 완전한 구원을 위해 그분께로 나오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단순한 믿음을 주셔서 오늘 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어린 양의 침묵
로버트 하이머스 박사님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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